‘풍요로운 삶’을 그리며 ‘코끼리 코’ 게임이 생각난다. 왼손으로 오른쪽 귀를 잡고 그 왼팔 사이로 오른손을 집어넣어 구부려 땅을 짚고 몇 바퀴를 돈 후 목적지를 향해 달리면 아무도 제대로 달리는 사람이 없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서 하나같이 제 자리에 쓰러져 뒹구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하게 된다.
풍요로운 삶 과정을 마치고 나니 이 과정을 경험하기 전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가 어디 있는지, 혹은 무엇인지 분명한데 그곳을 향하여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깝고 갑갑한 상황이었다.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람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잡다한 것에 마음을 뺏긴 채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풍요로운 삶’ 과정은 나의 마음과 시선을 빼앗던 것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시선을 잘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단순하지만 복음의 핵심을 확인하는 반복적인 질문들이 산만한 시선을 정리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 개척을 하며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기대는 쓰러져 가고 불안은 자라갔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몰아쳤고 그 와중에 ‘풍삶’을 만나게 되었다. ‘풍요로운 삶’의 모든 과정 하나 하나가 소중하지만 전 과정이 그리스도에서 출발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몰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몰이는 난폭, 강압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다. 급류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개울가를 따라 걷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께로향하는 여정이다.
‘풍요로운 삶’은 이 여정이 내가 가야 할 여정이고, 동시에 이웃을 초청해서 함께 가야 할 여정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결국 모든 족속이 이 여정을 함께 걸어가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담긴 소원으로 다가왔다.
12번째 주제인 ‘전도’를 다루는 주간에는 토의 없이 전도를 실행하는 것이 과제라면 과제요 예습이었다. 이로 인해 이런저런 사정과 핑계로 그간 손 놓고 있던 전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전도를 시작하자마자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현재형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일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이제 막 시작된 자그만 일의 결말이 어찌 될지도 다 알 수는 없다. 다시 실망하고 좌절할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 하더라도 코끼리 게임처럼 어지럼증으로 방향을 잃을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잡다한 것에 한눈파는 일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고, 모든 것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는 이 단순함이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요로운 삶’을 마친 것이 아니라, 이제 풍요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인도자 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펼쳐질 풍요로운 삶을 그리며 ‘풍요로운 삶’ 과정을 마친 소감을 몇 자 적어 보았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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