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복음 전도자요 찬송가 작사자인 호라티우스 보나르는 무려 364년이나 되는 긴 세월동안 많은 목사를 탄생시킨 경건한 집안에서 1808년 태어났습니다. 그는 에딘버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토마스 찰스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찬송가를 작사하는일뿐 아니라 저술활동도 활발히 하였습니다. 특히 Man: His Religion and His Word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교회를 위협하는 시대적인 조류에 대해서 계속 경고 하였습니다. 그는 거짓과 오류에 대해서 계속 투쟁했을뿐 아니라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결연한 자세를 초지일관 유지 하였습니다.
그의 글의 주제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잠깐 소개해 드립니다. "오래된것에 싫증을 내고 항상 새로운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속임을 당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께 속한것들에 대하여 흥미를 잃어버린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결코 '사랑안에 뿌리 내리고 터를 다진'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것을 사랑 하다가 파선 하였습니다. '무언가 새로운것'은 비단 아테네 사람들만 열망한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교회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함이 없이 여러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려 다닙니다.
오래된 진리들은 신선미가 떨어져 식상하게 된다고 생각 합니다(에베소서 4:14; 히브리서 13:9; 요한일서 4:1). 가려운 귀들과 선생을 많이 두는것을 경계 하십시요(디모데후서 4:3. 어떤값을 주고라도 진리를 사되(잠언서 23:23) 세상 모든 금은 보화를 준다고 해도 그 진리를 팔지 마십시요."
만약 이미 들었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외에 새로운 개념의 진리를 찾고 있거나 새로운 설명을 더 원한다면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온전한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쉬운예로 어떤 사람에 대하여 흥미를 잃고 싫증이 나면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섭니다.
새로운 개념의 진리를 찾는다는것은 새로운 진리의 개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진리의 본체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개인과 가정들과 교회들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는것은 진리의 본체가 되시는 단순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가치를 맛보지 못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 입니다.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 높은 지식과 학문이 너무나 단순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맛보고 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이론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 진리 앞에 세워 놓으면 얼마나 초라하기 짝이없고 유치 하기까기 할 정도로 낮은 수준으로 보이는지 모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앞에 서기전에는 그렇게 수준있어 보이던 이론들이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학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고 나니까 초등학문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고 고백 했습니다.
새로운것을 찾아 나서면 나설수록 우리의 영혼은 더욱 혼란스럽고 더욱 방황하게 되고 더욱 초라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본능은 늘 보아오던 옛것 보다는 새로운것을 보면 감정이 새로워집니다. 그 새로움의 맛에 취해서 계속적으로 새로운것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맛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새 싫증나게 만듭니다.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것을 찾아 나섭니다. 그렇게 찾아 나서는 세월이 한평생을 다 보내게 됩니다.
정처없이 떠도는 세월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월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본체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아닌 다른 무엇을 찾아 나서는 모든 시간들은 통째로 낭비하는 시간이 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세월을 낭비하고 살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영원토록 신실하게 인도해 주시며, 영원토록 진실한 동반자가 되어 주시고, 영원토록 후회없는 세월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그 아름다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붙잡고 또 붙잡고 또 붙잡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온전히 사로 잡히면 날마다 샘솟는 기쁨과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쁨이 없다는것을 알기에 이분외에 그 어떤것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이분 주 예수 그리스도외에 누구를 더 필요로 하며 누구를 더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정말 그분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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