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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 제 6과 성령충만 공부를 마친 소감문] 배인구 전도사(C&MA 소속)


“당신은 ‘성령충만’ 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방언, 통변, 예언, 치유, 축사 등등 여러가지 은사나 능력적인 부분들만 쉽게 떠올리거나 떠올라 지는 시대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이고 또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의 흔한 답변은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본다. 


신학을 전공했고 사역자라고 하는 나 역시 ‘성령충만’ 하면 어떤 ‘능력’ 같은 컨셉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6과 성령충만에 대해서 공부를 하며 참 많은 부분을 깨달았고 잘못된 부분도 있었음을 반성하고 고백한다.


첫째로 성령은 지, 정, 의를 가지신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데 돌아보면 나는 성령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미 성령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깨달음을 입었던 적도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사역을 감당케 하신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지식적으로만 알고 이해하고 있었지 나의 삶 속에서 전인격적으로 성령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은 없었다. 


다시 말해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으로 내가 필요할 때만 부르고 찾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 요정 정도의 수준이었다 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러하기에 당연히 성령충만은 커녕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깨닫게 하심 조차 무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었다.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두번째로 성령충만함의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 찬양, 감사, 피차 복종이라고 에베소서5장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며칠 전 피차 복종하지 못했고 감사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당연히 나의 감정과 무드는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였다. 마침 오늘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 부분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탄식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여승훈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된다고 하셨는데 역시 어느 쪽이 되었든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는 지금 내가 성령충만한가를 돌아보아야겠다.


세번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마치 톱니바퀴와 같이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너무나 내게는 큰 울림으로 깨달음으로 그리고 감동으로 새겨졌다.


특히나 성령이 예수님으로부터 발원되지는데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그 말씀은 곧 내 손에 있는 성경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비로소 성령충만해질수 있다는 놀라운 원리이며 진리를 깨달았다. 성경을 읽다보면 설교를 해야 하기에 또는 어쭙잖은 성경의 배경을 공부했기에 초점이 흐려질 때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초점을 예수께 두는데 있다는 가르침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한번도 그 누구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예수님을 만날수 있는 이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그리고 성령충만은 덤이다.


6과 성령충만을 공부하면서 반성도 회개도 많이 해야 할 부분들이 드러났고 깨달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과 더욱 가까워 질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와 찬양과 무한한 영광을 하나님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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